2066년, 전지구적 폭우와 대륙을 덮친 거대한 해일이 찾아온 그 해. 해수면의 폭발적인 상승으로 세상은 물에 잠겼습니다. 육상 생물 종의 80%가 멸종하였으며 대륙의 90%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해양 생태계는 변종 어류의 출몰로 인해 크게 변화하였습니다. 인류는 약 97%의 인구를 상실하였고 살아남은 이들마저 적자생존에서 밀려 인류종속의 가능성이 희박하던 그때—. 살아남은 인류의 일부분이 이능력을 각성하였습니다. 인류는 이들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2077년. 가까스로 뭍에서 안정을 찾은 인류가 우리의 것을 수복하기 위해 가장 유능한 이능력자를 심해로 파견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일명, 어비스 헌터. 심연의 사냥꾼들.
인류는 전염병으로 멸망했습니다. 아니 멸망해 가고 있습니다. 이곳은 인공지능으로 이루어진 미래 연구소. 거대한 모니터를 띄워놓고 오늘도 끝나가는 생명을 관측합니다. 더 이상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합니다. 이들은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요?
까만 정장을 입은 KPC가 말을 내뱉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 몇백년 간의 시간 속에서 축적되어 왔던 가문의 역사와 괴이의 기록. 괴이에 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들. 모두의 평화를 위해 최전방에 서서 괴이를 퇴마(退魔)해왔던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정부가 우리한테 그걸 숨기고 있다는 거야.” KPC는 빛바랜 종이 조각을 건넵니다. 종이는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처럼 낡고, 얇습니다. 종이 조각에 적힌 것은 단 다섯 글자. 그마저도 몇 글자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잘려있습니다. 추측하건대, ‘本自同根生’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다.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탐사자들의 시선이 마주칩니다. 무엇이?
성인이 된 해의 겨울. 하늘에서는 눈 대신 날개가 달린 마물들이 이따금 쏟아져 나왔습니다. 마물의 저주인지,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영혼이 빠져나간 인형처럼 기묘한 형태로 사망했으며, 곳곳에서는 비명소리와 함께 세계의 멸망을 기다리는 노래가 누군가의 입과 입을 통해 흘러나옵니다. 우리들은 각자의 영지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벽은 더 높아지고 두꺼워졌으며, 경비는 삼엄해졌습니다. 중앙에서는 이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원군 요청이 들어왔으나 마냥 영지를 비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영주의 표정은 어두웠고, 무언가를 깊게 고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영주는 영지에 남아 땅을 지키기로, 우리들은 중앙으로 향해 애셜의 원군요청에 응하게 됩니다.
이곳에 오니 세상의 중심이 어딘지 알 거 같아.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中 세상의 중심에서 In the center of the world
당신은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방에서 눈을 뜹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결박된 KPC?
「청춘! 이 곳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밤이 아름다운 도시 방콕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다면 “방콕 호텔 바캉스” 책자를 참고해주세요.」 여행 3일차, 잠에서 깬 PC의 머리는 몽롱합니다. 기억을 더듬어서 어젯 밤으로 돌아가면… 술을 엄청 마시고 KPC랑… KPC랑… 뭐했죠?
“여름에 우리 섬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소낙비가 내려.” 그렇게 말하는 KPC의 어깨너머로 쾌청한 음률이 흐드러진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외딴 시골 섬은 늘 물안개가 자욱하지만 포근하고, 주민들은 상냥합니다. 특히 KPC. 그가 당신에게 보내는 미소와 다정한 배려는 마치 여름에 번지는 새파란 물감과도 같아서, 속절없이 파랗게 스며들어요. 하지만, 이 섬…. 어딘가 기묘합니다. 하나같이 꺼림칙한 와중에 의심스럽지 않은 사람은 KPC 뿐인 것 같아요. 아니죠, 탐사자. 확신할 수 있나요? …어쩌면 필연히 마주친 소낙비에 젖어서, 이미 물들어 버렸을지도 몰라요.
여러분은 지금 살아가는 일상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나요? 가끔 괴담을 읽으며 섬뜩하다 느끼면서도 자신에게는 있을 리 없는 일이라며 웃고 있지는 않나요?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비일상통제센터의 직원들. 일상적이지 않은 괴기한 현상을 몇 번이고 부딪히며, 피를 흘리며, 죽어가며 결국은 일상으로 되돌리는 사람들. 그들이 흔히 말하는 나폴리탄 괴담의 매뉴얼은, 우리가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 비일상은 환영역 5호선 지하철역이군요. 가봅시다. 당신의 목숨으로 하여금 예측할 수 없는 비일상에 매뉴얼이라는 질서를 만들어 새겨 넣기 위해. 예측할 수 없는 것들에게 질서를, 대를 위한 희생에게 영광을.
파트너,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야만 해. 설령, 상대가 번개일지라도.
왕을 알현한 후로부터 6년, 곧 가을이 끝나가는 시점입니다. 이상하게도 2년 전부터는 하늘에 먹구름이 잦게 끼더니 요새는 태양을 온전히 볼 수 있는 날이 드물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약 2주일 만에 볕이 드는 날이네요. 우리들은 각자의 성에서 편지를 받습니다. 발신인은 릴리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릴리를 기억할 수도, 어쩌면 잊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6년이나 지났으니까요.
PC는 뱀파이어들의 수장인 KPC를 없애기로 맹세하였습니다. 더없이 악독하고 차갑고 심장이 뛰지 않는 KPC는 다시금 죽어야 합니다. 그를 죽이기 위해 당신은 KPC 곁에 잠입하기로 합니다. 뱀파이어에게 바쳐지던 제물. 그중 하나가 되어 그를 마주하는 것입니다. 뱀파이어에게 바쳐지기 위한 이 행렬을 사람들은 결혼식이라 칭합니다. 웅장한 장송곡이 울리고 화려한 부장품을 휘감은. 그야말로 결혼식이라는 탈을 쓴 장례식입니다. 일생일대의 원수인 KPC만 죽인다면 원이 없을 것입니다. 뱀파이어 성으로 잠입한 PC은 세계의 존속을 결정하게 될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아직은 쌀쌀한 초봄, 기분 전환 삼아 혼자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던 KPC는 여행 일정이 다 지나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먼저 연락이 왔던, 당신이 연락을 보냈건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지내보니 좋은 곳 같아서, 앞으로 여기서 살기로 했어. 아예 이쪽으로 이사해서 그곳에 있는 짐은 모조리 버리고 여기서 새로 살거야. 앞으로 보기 힘들겠네. 갑작스러운 결정입니다. 이렇게 대책 없는 결정을 할 사람은 아니었는데요. 당황한 당신은, 시간을 내서 직접 그곳에 방문해보기로 합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던, 적어도 얼굴 보고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던. 떠나는 길에는 얕은 비가 내립니다.
당신은 우주 탐사대원입니다. 며칠 전, 끈질긴 조사 끝에 외계의[골든 레코드]를 확보하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게 되었지요. 1200일의 길고도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1인 탐사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ㅡ "탐사대원님, 사랑해요." ···지구로 돌아가는 길, 우주선의 운행 보조 AI가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1200일간 당신의 유일한 말동무이던 AI가 마침내 고장난 게 틀림없습니다. ···아마도요.
과거와 현재는 위기의 척도가 다릅니다. 공과금이나 카드값을 갚는다거나. 필요한 공부를 한다거나. 삶에 치이는 식이 가장 치열할까요. 누구나 삶은 힘겹다지만 부정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당신은 어쩌면 과거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만큼 안온한 날을 누리고 있습니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 떠다니는 구름을 소음없이 바라보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방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감상하는 것. 쓰레기가 굴러디니지 않는 거리를 마음 편히 걷는 것······. 물론, 그 감사함과 안도를 쉽게 실감하지 못합니다. 날마다 세상에는 온갖 뉴스가 쏟아지지만 그건 내 일이 아닌걸요. 안타까움을 느낀다거나. 놀라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지요. 그들이 바랐을 이해른 그토록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부터는 당신 또한 실감하게 될 겁니다. 그림을 바라보았을 뿐인데도 낯선 풍경을 마주한 기분은 어떠신가요. 아무리 말하더라도 믿어주지 않을 추억을 갖게 된 심경은 어떻습니까. PC, 이 마법은 결코 잊히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