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쌀쌀한 초봄, 기분 전환 삼아 혼자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던 KPC는 여행 일정이 다 지나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먼저 연락이 왔던, 당신이 연락을 보냈건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지내보니 좋은 곳 같아서, 앞으로 여기서 살기로 했어. 아예 이쪽으로 이사해서 그곳에 있는 짐은 모조리 버리고 여기서 새로 살거야. 앞으로 보기 힘들겠네. 갑작스러운 결정입니다. 이렇게 대책 없는 결정을 할 사람은 아니었는데요. 당황한 당신은, 시간을 내서 직접 그곳에 방문해보기로 합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던, 적어도 얼굴 보고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던. 떠나는 길에는 얕은 비가 내립니다.
당신은 우주 탐사대원입니다. 며칠 전, 끈질긴 조사 끝에 외계의[골든 레코드]를 확보하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게 되었지요. 1200일의 길고도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1인 탐사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ㅡ "탐사대원님, 사랑해요." ···지구로 돌아가는 길, 우주선의 운행 보조 AI가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1200일간 당신의 유일한 말동무이던 AI가 마침내 고장난 게 틀림없습니다. ···아마도요.
과거와 현재는 위기의 척도가 다릅니다. 공과금이나 카드값을 갚는다거나. 필요한 공부를 한다거나. 삶에 치이는 식이 가장 치열할까요. 누구나 삶은 힘겹다지만 부정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당신은 어쩌면 과거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만큼 안온한 날을 누리고 있습니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 떠다니는 구름을 소음없이 바라보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방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감상하는 것. 쓰레기가 굴러디니지 않는 거리를 마음 편히 걷는 것······. 물론, 그 감사함과 안도를 쉽게 실감하지 못합니다. 날마다 세상에는 온갖 뉴스가 쏟아지지만 그건 내 일이 아닌걸요. 안타까움을 느낀다거나. 놀라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지요. 그들이 바랐을 이해른 그토록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부터는 당신 또한 실감하게 될 겁니다. 그림을 바라보았을 뿐인데도 낯선 풍경을 마주한 기분은 어떠신가요. 아무리 말하더라도 믿어주지 않을 추억을 갖게 된 심경은 어떻습니까. PC, 이 마법은 결코 잊히지 않을 거예요.
가을 휴가를 앞둔 여러분은 메사추세츠의 숲을 낀 도시에 위치한 별장을 대여합니다. 타인 소유인 별장을 대여한다는 점이 평범한 휴가와 다른 자극이 되지 않을까요? 가을 숲길을 따라 운전하면 해질녘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초대장 메일에 적혀 있던 문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네요.
전서구의 편지를 받고 어두워진 표정의 영주가 기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보통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여러분에게는 이런 무거운 자리에 끼워주지 않는데, 무슨 일인지 오늘은 여러분도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도 왜 우리가 중앙으로 떠나게 되는지는 여러분은 알 수 없습니다. '왕의 부름'.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발설할 수도, 발설해서도 안 된다는 표정의 영주는 모든 준비를 일사천리 하게 진행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성으로 오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조그만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작은 지진과 함께 밑바닥이 가라앉더니, 동굴 입구가 드러났다. 그 동굴 입구에서 한 사람이 나와 말하길, 자신은 천 년 전에 멸망한 황금 나라의 왕이라고 했다. 과거 영화를 누렸던 그 나라는 지하 깊은 곳에서 광란의 마술사에게 지금까지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마술사를 쓰러뜨린 자에게는 내 나라의 모든 것을 주겠노라.” 그 말만 남기고 먼지가 되어 사라진 사람을 본 지 이제 어언 100년. 그 동굴은 주기적으로 탐험하는 사람을 잡아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모든 것을 주겠다는 말에 홀린 사람들이 도전하기를 몇 번이었다. 그럴 사람들은 그래도 되었으니까. 우리는 절대 아니었다.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갇혀버린거지?!
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 닭장 같은 집들. 어떤 역사에도 자세히 쓰여지지 않을 인생. 그래도 우리는 여기에 살아 있어,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무슨 의미일지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낡아빠진 문 너머로 쾅, 쾅, 쾅 하는, 우악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나야, 좋은 일거리 하나 가지고 왔어.” 목소리의 주인은, KPC입니다. 반쯤 고장나 이제는 여는 데에 힘이 아주 많이 들어가는 문을 몇 번 걷어차 열어젖히면, 그는 당신의 집 안으로 자연스럽게 발을 딛고서는 소파에 몸을 묻습니다. “너 나랑 배달 좀 하자.”
KPC는 당신에게 아주, 아주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를 잃고난 후 당신의 일상은 허물어져내렸습니다.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바랐으며,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당신은 그 모든것을 잃은 채 엉망이 된 생을 그저 놓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집안 꼴이 이게 뭐야?” KPC네요. KPC요? 네. 맞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에서는 무언가를 구제할 수 있습니다. KPC 그 자체이건, PC의 삶이건 말이죠. 하지만 잊지 마세요. 이 이야기는, 당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